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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되던 시점인 1971년 2월 19일 한국임학회가 개최되던 중 임산가공분야 회원 10여명이

            임업시험장 조재명 목재가공 과장실에 모여 임산가공의 발전 문제를 숙의한 끝에, 먼저 “임
            산가공연구회”를 조직하여 운영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학회로 발전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.




               그 후 대학, 연구기관 및 산업체에서 임산가공 분야에 종사하는 56명이 1972년 7월 15
            일 임업시험장 대강당에 모여 “한국목재공업기술협회”를 창립하였다. 본 협회는 최초로

            1973년 3월 “목재공업” 제1권 1호를 발간하였다. 협회지에는 총설, 자료, 공장소개, 협회 기
            사 등이 게재되었다. 필자도 “단판보수용 국산 감 테이프의 품질”이란 제목의 연구 자료를

            발표하였고, 또한 그해 9월에 발간된 목재공업 제1권 제2호에는 “합판용 국산도료의 품질”
            이란 제목의 연구 자료를 발표하였다. 당시는 대부분 부자재를 일본 등지에서 수입하여 사

            용하였던 시기라 가득률이 아주 낮았고 부자재의 국산화 열망이 컸었다. 목재공업이란 회지
            는 학술정보 교류와 공론의 장으로서 학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된다.


               상기 한국목재기술협회의 명칭은 1978년 4월 28일 “한국목재공학회”로 개칭되었는데,

            당시 학회 명칭을 정함에 있어서 명칭의 핵심 주어를 목재 또는 임산으로 하느냐의 논쟁 끝

            에 목재로 결정되었다. 우리 학회는 정부의 각종 협회 정리 방침에 따라 이루어졌고, 학회지
            명칭도 목재공업에서 “목재공학”으로 변경되었다. 학회지 발행과 학술발표회도 정기적으로

            개최되었기 때문에 학술 정보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었다. 필자는 편집위원과 편집위원장으
            로 다년간 활동하였고, 목재공학 8(1)호에 “열기 및 열수 처리가 목재의 이학적 성질에 미치

            는 영향”이란 제목의 소원택 대학생(전 전남대 교수) 석사논문을 처음으로 공동 발표한 이래,
            목재공학에 55편과 정기학술발표회의에 18편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.



               둘째, 한국목재공학회 회장으로서 국내외 활동과 목재공학 분야의 미래 연구를 전망해 본다.
               필자는 학회가 창립된 지 18년째 되는 년도에 학회장에 선임되어 학회를 운영하게 되었

            다. 당시 목재공업계는 양적으로 신장되었지만, 당면 과제로서 목재자원의 획득문제를 위시
            하여 신기술 개발의 필요성과 국제경쟁력 제고 등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었던 시기였다. 필

            자는 학회의 학술 발전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자 노력하였다. 즉 종래 다소 경직
            된 학회 운영에서 벗어나 여러 회원과 임원의 중지를 모아 민주적으로 학회를 운영코자 노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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