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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러 시설이 있었다. 이 기기들은 공장동 두 동에 나누어 배치되어 있었고 6.25 전쟁 당시

                        미군이 설치했던 컨세트 막사와 동일 한 것으로 원형의 도당 밑 내부에는 그 당시 처음 접하
                        는 희귀한 장비였다. 우리로 하여금 정말 탐나게 했던 폐놀수지 합판으로 마감한 조립식 건

                        물로서 우리나라 70년대의 합판산업 발전을 가져오게 한 바로 그 목질재료였다.



                           학회운영을 위한 대학주관학과의 증가와 학문의 분화 발전

                           학회창립 당시 학회를 운영할 수 있는 대학주관학과의 수가 서울대학교 임산가공학과
                        (1970년 신설, 현재 산림과학부, 환경재료과학전공)와 강원대학교 임산학과(1972년 신설, 현재

                        목재종이과학부 목재과학전공, 종이소재과학전공 = 제지공학과 1988, 신설) 두 개밖에 없었다. 그
                        리고 두 개 학교의 교수진도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교수의 숫자도 적었고 학생을 위한 전

                        공서나 총서도 거의 없어 대학의 강의 질이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. 그러나 목재산업계는 해
                        방 및 6.25 전쟁 이후 전쟁복구와 가구에 사용하는 목재를 충당하기 위한 제재산업 및 정부

                        주도형으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던 합판산업의 영향으로 생산 기계들을 들여오면서 제조
                        기술도 같이 들어 왔으나,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기술과 연구 및 정보가 매우 필요하던 시기

                        였다. 따라서 그 동안 임학과에서 약 20%의 임산 분야를 맡아 강의와 연구를 하던 인력만으

                        로는 새로운 학회를 운영하기는 힘든 처지에서 대학, 연구기관 및 산업체의 임산 분야 56명
                        이 먼저 1972년 “한국목재공업기술협회”를 창립하고 1978년에 협회라는 명칭을 학회로 변

                        경하게 되었던 것이다.



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후, 국민소득의 증가와 주택구조가 아파트로 변화함에 따라 생활양식이 서구화하면
                        서 80년대는 가구산업으로 발전하면서 경상대학교가 1983년에 과를 신설하였고 1984년에

                        충남대학교가 임산가공으로 전공을 분리하여 학부생을 별도로 선발하여 운영하였다. 1987

                        년에는 필자의 주례를 맡으셨던 서명원 문교부 장관님에게 임산공학과 신설에 대한 한국내
                        의 인력양성이 매우 절실히 필요하다고 필자가 데이터로 브리핑하자 잘 알았다고 말씀하셨

                        는데, 발표가 난 것을 보니 충남대학교는 물론 경북대, 충북대, 전남대, 전북대까지 모두 과
                        신설이 되었다. 덕분에 학회를 운영할 수 있는 대학 단위 구조가 80년대에 제대로 갖추게 되

                        었으며 관련 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.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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